비만이 당신을 죽인다는 경고문이 적힌 프랑스 비만 퇴치 포스터. <경향신문>
 
“장미꽃 주위를 돌자/ 한 주머니 꽃이 가득/ 에취! 에취!/ 우리 모두 넘어진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4분의 1인 25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최대의 전염병인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했을 때
유럽 아이들이 불렀다는 동요다. 이 동요에서 ‘장미꽃’은 흑사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가공할 흑사병에 대한 경고가 현대 의학이 지배하는 21세기에 다시 나오고 있다.
병원(病源)은 쥐벼룩이 아니라 비만이다.
더욱이 흑사병 앞에 ‘미래의’라는 수식어를 붙여 아동 비만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아동 비만은 나라나 학자마다 주장이 약간 다르지만
일반적·국제적 기준은 이상적 체중 대비 105% 이상을 과체중, 120% 이상을 비만으로 규정한다.
체질량 지수(BMI: Body Mass Index, 아동의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를 기준으로 삼기도 하는데
전체 아동 중 상위 85% 이상에 해당하는 아동을 과체중 아동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 소아·청소년의 20~30%가 과체중에 해당한다.

“비만은 치료받아야 할 질병”
그렇다면 왜 아동 비만에 ‘미래의 흑사병’이라는 끔찍한 이름을 붙였을까.
김초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영양정책지원센터장은 “비만 아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특정 집단이나 소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정한 시기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데 대한 경종의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흑사병’이라는 ‘별명’에 비만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도 비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동의 과체중을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의료계에서도 뚱뚱한 아이를 ‘비만 아동’이라고 부르지 않고 ‘과체중 아동’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동 비만의 심각성이 결코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오상우 동국의대 교수(동국대학병원 비만클리닉 소장)은
“비만은 아동이든 성인이든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라고 전제하고 “
소아 비만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비만 성인의 경우 발병률이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아 비만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동 비만은 식생활 개선 등으로 치료할 수 있는 성인 비만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상우 교수는 “성인은 지방세포 개수는 변함없고 세포의 크기만 커지지만,
어린이는 지방세포 수도 늘어나면서 크기 또한 비대해진다”면서 “지방세포의 크기는 줄일 수 있지만
한 번 늘어난 수는 절대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성장기에 비만이었던 아이는 철저하게 다이어트를 해도 지방세포 수가 줄지 않기 때문에
다시 비만해질 위험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뿐 아니라 부모가 저소득층인 아동에게 상대적으로 비만 아동이 많다.
오상우 교수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자녀의 비만이 수적으로 거의 같은 수준”이라면서
“저소득층이 치료조차 할 수 없어 심각성을 더한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비만이 많은 것은 저체중으로 출생한 아이가 비만성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나
식량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만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오상우 교수는 “제대로 영양이 공급되지 않는 사람의 체내 대사는 당연히 영양을 저장하는 시스템이 발달한다”면서
 “패스트푸드 같은 값싸고 고칼로리 식품을 섭취하고
또 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 지방은 비만의 직접적 원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